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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 <고산자, 대동여지도> 차승원 주연

by Candoo 2022.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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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고산자&#44; 대동여지도 포스터
고산자, 대동여지도 포스터

천하의 지도꾼이 열은 조선의 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

지도가 곧 권력이자 목숨이었던 시대, 조선의 진짜 지도를 만들기 위해 두 발로 전국 팔도를 누빈 고산자(古山子) 김정호 하나뿐인 딸 순실이 어느새 열여섯 나이가 되는지도 잊은 채 지도에 미친 사람이라는 손가락질에도 아랑곳 않고 오로지 지도에 몰두합니다. 나라가 독점한 지도를 백성들과 나누고자 하는 일념 하나로 대동여지도의 완성과 목판 제작에 혼신을 다하는 김정호. 하지만 안동 김 씨 문중과 대립각을 세우던 흥선대원군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손에 넣어 권력을 장악하려고 합니다. 역사로 기록되지 못한 고산자 김정호의 감춰진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지도꾼 김정호, 역사로 기록되지 못한 이야기

지도꾼 김정호는 조선 후기의 지도학자, 측량 학자, 지리학자입니다. 자는 백 원(伯源) 호는 고산자(古山子)입니다. 김정호가 지도 제작과 지리학에 재능이 많았으나 국가는 지도 제작에 전혀 뜻이 없어 김정호 자신이 직접 전 국토를 답사하여 지도를 만들었지만, 쇄국 정책을 취하던 흥선대원군이 이에 분노하여 나라의 기밀을 누설했다며 대동여지도를 압수하고 김정호 부녀를 감옥에 가뒀고 결국 김정호는 옥사했습니다. 이후 조선어 독본에서는 일본에서 대동여지도를 입수 러일전쟁 때와 이후 토지조사사업에서도 유용하게 사용했습니다. 김정호에 대한 기록이 부실해서 오늘날 현존하는 자료는 많지 않으며 김정호의 태생은 좋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잔반이나 중인 출신으로 추정됩니다. 김정호는 추사 김정희와 교류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로 미루어보아 실학을 접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대동여지도는 조선의 지리학자인 김정호가 1861년에 제작한 한반도의 지도, 보물 제850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시대와 권력에 맞선 고산자 김정호

영화를 보면서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김정호라는 인물이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찾아보았습니다. 김정호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나와 있지 않았습니다. 전반적인 시대의 흐름으로 보았을 때 영화의 내용은 거의 완전한 허구에 가까웠습니다. 대동여지도가 완성된 해가 1861년인데, 이하응이 흥선대원군이 된 건 1863년입니다. 제작 과정에서 흥선대원군이 등장한 시점에서부터 이미 판타지가 된 것입니다. 중간에 등장한 천주교 박해는 병인박해를 모티브로 삼은 것 같은데, 이건 1866년입니다. 이 해가 김정호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김정호가 지도를 국가에 바치지 않는 이유도 생각해 보면 영 이상합니다. 김정호는 대동여지도가 백성들을 위한 지도라고 언급하는데, 실제 대동여지도는 총 22첩, 세로 6.6m, 가로 4.0m에 이르는 초대형 지도로 개인이 휴대하면서 사용할 만한 물건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대동여지도는 관부용(官府用) 지도로 평가되며, 이것을 국가에 바치지 않고 굳이 대중에게 보급하려 하는 작중 묘사는 전혀 설득력이 없습니다. 또한 대동여지도는 신헌으로 대표되는 정부 고위 관료들의 도움을 받아 제작된 것입니다. 비변사, 규장각 등의 정부 자료도 사용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국가의 지원을 받아 국가를 위해 제작한 지도를 이제 와서 국가에 바칠 수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설정입니다. 완성된 대동여지도는 제일 먼저 국가기관에 들어갔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김정호는 독도를 향해 가는데, 실제 대동여지도에 독도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독도가 한국 땅이 아니라는 것이 아니라, 독도를 지도에 넣기 위해서는 목판 1장이 더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대동여지도에 독도가 들어간 것이 발견되긴 했는데, 이것은 목판에 대고 그린 필사본 중 하나입니다. 김정호가 새긴 대동여지도 목판에는 독도가 없습니다. 저런 설들을 영화에서 썼으면 영화 시작 전 또는 영화 엔딩 부분에서 각색된 내용이 들어갔음을 고지해 줘야 관객들이 잘못된 역사 인식을 덜 가지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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